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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MI 공지사항

이 달의 공과(2021년10월)

miakang 작성일 21-10-21 14:55 37회 0건

본문

0월 공과 카보베르데: 세계로 향한 사명이 있는 섬 1

- By Debbie Salter Goodwin

 

공과 목적

카보베르데 나사렛교회 119년간의 영향력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념하고, 카보베르데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세계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 어떤 역할을 계속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말씀: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66:19)

 

급변하는 현상들

카보베르데는 초기 나사렛 선교지 중 세 번째로 1901년에 시작되었다.

카보베르데(Cabo Verde)는 아프리카 지구, 루소폰 필드의 일부다.

카보베르데 두 연회 중 북연회는 산토 안탕, 상 비센테, 상니콜라우, , 보아비스타의 섬을 포함한다. 201921교회, 정회원은 2820명이다. 민들로의 가장 큰 교회의 평균 예배 참석자는 272명이다. 남연회는 마이오, 산티아고, 포고, 브라바 섬을 포함한다. 201943교회와 정회원 5,690명을 두고 있다. 수도 프레이아의 가장 큰 교회는 평균 258명의 예배 참석자가 있다.

 

공과 안내

 

지도에서 카보베르데를 보면, 계속해서 성장하는 선교사역을 확립하는데 복잡함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사렛 교회 119년의 역사를 가진 카보베르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고 싶을 것이다. 답은 둘 이상의 사람이나 전략을 가리킨다. 그것은 카보베르데인 개척자의 정신, 끈기 그리고 하나님의 기회와 충실한 복종 사이의 놀라운 교차점이다. 이것이 당신이 알아야 할 이야기이다.

 

짧은 역사

카보베르데 공화국은 아프리카 세네갈 서해안에서 약 483km 떨어진 대서양의 10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졌다. 1462, 포르투갈 정착민들이 도착하여 성 제임스(야고보)의 이름을 딴 산티아고 시를 세웠다. 거의 55만 명(2019)9개의 섬에 살고 있으며 아프리카적 요소를 가진 로마 가톨릭이 가장 보편적인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나사렛교회는 오늘날 개신교 단체 중 가장 먼저 명단에 올라 있다.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인 반면, 포르투갈어를 기반으로 한 크리올어(Creole)는 이 섬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카보베르데는 푸른 곶을 의미하며 이는 열대 섬들을 매우 잘 묘사한다. 초록색은 산봉우리 사이를 미끄러져 내려가며, 초록 빛깔의 모자이크로 계곡을 물들이는 푸르른 풍요로움을 퍼뜨린다. 하얀 모래사장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도시들은 도색된 벽돌과 지붕의 다양한 색깔로 모아져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초기의(최초의) 나사렛 선교사들

주앙 디아스 목사

주앙은 카보베르데 브라바 섬에서 태어나 자랐다. 1889, 선장의 아들인 주앙은 아버지와 미국 동해안으로 갔다. 그는 매사추세츠 뉴 베드포드에서 포르투갈인 공동체를 발견했고 2년 후, 개신교 사절단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주앙은 로마 카톨릭 교육 방식으로는 받은 적이 없는 복음을 들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고국으로 돌아가 완전한 순종과 거룩한 삶의 메시지를 나누는 열정을 키워나갔다.

주앙 디아스는 1901년 미국 오순절 교회(PCA)의 얼마 안 되는 재정 지원을 받아 카보베르데로 돌아왔다. 1907PCA가 나사렛교회와 합병했을 때 카보베르데는 나사렛교회의 창립일을 지켰다.

주앙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그는 미소보다 더 많은 주먹을 만났다. 왜냐하면 그의 메시지가 사람들이 포용하는 크리올-아프리카-카톨릭 파생문화를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는 바울 이야기처럼 들린다. 네 번이나 투옥되고, 돌에 맞아 의식을 잃을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간증을 계속 나누었다. 어떤 이는 응답하여 그리스도께 삶을 드렸다. 그들 또한 잔인하게 박해를 받았다.

1914년까지 주앙은 60명의 신도와 함께 브라바 섬에 교회를 세웠다. 그는 첫 사역부터 고향에서 시작하였다.

 

에버렛 하워드 목사 부부

1930년까지, 복음을 사람이 사는 9개의 섬으로 전하려면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이 분명했다. 에버렛과 가넷 하워드는 주앙 디아즈목사가 사역을 시작한 30년 후인 1936년에 파견된 나사렛 선교사였다.

하워드는 도움이 필요한 개척 사역 이상의, 복음을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발견했다. 하워드는 디아즈 목사의 사역을 계승하여 9개 섬이 하나의 연회가 될 수 있다고 믿고 다른 섬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핵심 섬에 전략적인 사역을 세우기 시작했다.

불행히도, 섬 여행은 여전히 원시적이었고 도전이었다. 카보베르데에서 태어난 딸 조는 정해진 시간표보다는 바람에 완전히 의존하는 돛단배를 타고 섬에서 섬으로 가는 여행의 기억이 있다. 노 젓는 작은 배는 범선에서 갈아타는 승객들을 태우고 힘껏 노를 저은 다음 파도를 앞서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가 건조한 땅으로 실어 나르곤 했다.

하워드 목사도 새 목회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임시 트레이너"라고 불렀다. 1951, 그가 현장을 떠나기 전에 3개의 섬을 제외한 모든 섬에 선교활동이 존재했다.

 

클리포드 게이 목사 부부

하나님은 이 중요한 시기에 섭리의 교차로를 편성하셨다. 클리포드 게이는 앙골라에서 사역하던 웨일즈 출신의 선교사였다. 카보베르데를 거쳐 목적지인 앙골라까지 가야 했던 게이는 에버렛 하워드를 만났다. 하나님은 그들의 만남을 통하여 클리포드를 부르셨고 카보베르데를 돕게 하셨다. 그 후 10년 안에 클리포드는 나사렛교회에 가입하여 안수를 받고 나사렛 선교사가 되었다. 게이가족은 브라바에서 목회하며 수도 프레이아에 중요한 사역을 세웠으며, 1958, 필드 감독에 임명되었다. 그는 카보베르데에서 30년간 사역하였으나 1972, 뜻하지 않게 세상을 떠났다.

 

얼 모스텔러 목사 부부

1946, 얼 모스텔러 부부는 카보베르데에서 선교단체에 가담하여 산티아고 섬의 수도 프레이아에서 먼저 사역하고 상 빈센테에서 새 사역을 확립했다. 그는 카보베르데를 위해 서신(리마 작문)이라고 불리는 소식지를 정리했다. 그는 목회하며, 건물을 재건했으며, 12년 동안 새로운 사역을 감독했으며, 몇몇 지도층 직책을 역임했다. 그는 두 가지 중요한 발전을 위한 촉매이자 초기 기폭제였다: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을 위한 나사렛 포르투갈어 출판 시도와 나사렛 신학교.(세 가지 시작 참조)

 

필요가 가시화되면서 더 많은 선교사들이 왔고, 사람들이 소명을 받게 되었다. 스레이더 부부는 1972년부터 1981년까지 카보베르데에서 9년을 보냈다. 그들은 1975, 카보베르데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했을 때 그곳에 있었고 교회가 급변하는 정치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나아가 하나님은 카보베르데 출신의 목회자들을 부르셨는데, 그들은 많은 헌신적인 개척자들의 토대를 바탕으로 계속 세워져갔다. 그 중 하나는 루치아노 고메스 드 바로스였다.

 

루치아노 고메스 드 바로스 이야기

루치아노 바로스는 산티아고 섬의 전문 사진작가였다. 하워드 목사는 프레이아에 도착하여 예배드릴 장소를 물색하고 루치아노의 사진관을 마음에 두었다. 바로스는 성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선교사와의 모임은 그의 영어 공부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와 아들 호르헤는 하워드목사가 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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